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The Murder of Roger Ackroyd, 1926년 발표, 애거서 크리스티 6번째 작품
크리스티 여사가 작가 활동 초창기에 낸 작품으로, 그녀의 대표적인 추리소설 중 하나이다.
시골 동네에서 부자인 애크로이드가 살해 되자 작품의 화자이자 마을 의사인 셰퍼드가 탐정 에르퀼 푸아로와 함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
존경받는 부자이지만 괴팍하고 성깔 있는 성격의 애크로이드는 셰퍼드 의사의 절친한 친구였다. 애크로이드가 살해당하자, 마침 은퇴하여 셰퍼드 의사의 옆집에서 호박을 키우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려 하고 있던 에르퀼 푸아로가 사건에 끌려들게 된다.
크리스티의 발전이나 변화를 볼 때 여러 면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우선 훗날 계속해서 나오는 "평화로운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한 크리스티의 소설로선 이것이 처음이며, 셰퍼드의 누나인 캐롤라인은 훗날 미스 마플의 캐릭터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중 등장인물들이 파티에서 마작을 하는 장면에서 당시의 마작(Mah Jong) 열풍을 엿볼 수 있다.
작중 세실 애크로이드 부인의 입을 통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들을 나쁘게 얘기해서 크리스티의 반유대감정이 나타나는 부분 중 하나다.
어쨌든,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다. 특히 내용, 그 중에서도 결말부가 중요한 작품으로 이 책을 읽을 예정이거나 마음이 있다면 절대 아래 스포일러를 보지 않기를 바란다. 별 생각없이 내렸다 크게 후회할 수 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가 뜻밖이다. ... 범인은 바로 셰퍼드 의사. 즉, 화자가 범인. 정말 뒤통수 후려치는 반전이었다. 한 번 소설을 읽은 후 다시 정독하면 작가가 여기저기에 남겨둔 힌트와 암시가 눈에 띈다.
셰퍼드가 애크로이드를 죽인 이유는 자신이 협박했던 여성이 자살하기 전 애크로이드에게 모든 진상을 적은 편지를 보내서였다. 물론 애크로이드는 편지를 읽지 못하고 죽었다. 엔딩에서 셰퍼드는 푸아로의 배려(?)로 자살하며 죽기 직전에 왜 하필 푸아로가 자신이 사는 마을로 호박을 키우러 왔는지 원통해한다.
즉 이 소설은 작중에서 셰퍼드 의사가 기록한 사건의 경과일지 그 자체다. 셰퍼드가 이 사건을 기록한 것은 "푸아로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의 기록으로 남길 생각이었는데 결국 푸아로는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일부 추리소설 팬들이나 다른 추리 작가들은 작가의 '범인을 숨기는 방법'이 정당치 못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파일로 밴스> 시리즈로 유명한 반 다인이 이 소설을 읽고 '독자를 기만했으며 원작자 혼자만의 덧없는 자기만족이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 대해 반박이 존재하는데, 반 다인 등의 비판은 어디까지나 추리소설을 '작가 vs 독자의 범인 맞추기 대결'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에 기반했다는 것.
서술 트릭의 원조로 여겨지는 소설인데, 국내 어떤 출판사는 띠지에 '범인은 바로 당신이다'라고 써 놓아서 눈치 빠른 사람은 다 알 수 있도록 한 병크를 저질렀다. 그리고 이 소설 이후로 '나'가 등장하는 1인칭 시점의 추리소설 또는 미스터리 소설은 일단 '나'부터 의심하게 되었다 카더라.
앞에서도 서술되어 있지만, 기발한 트릭으로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들 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오리엔트 특급살인' 과 함께 대표작으로 꼽히며, 여사 자신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다음으로 가장 잘된 작품으로 뽑았다.
영화화도 되었는데 소설과는 구성이 다르다. 원작에선 셰퍼드 의사의 시점으로 진행되다가 중반에나 푸아로가 등장하는데 비해, 영화에서는 푸아로가 셰퍼드와 애크로이드의 친구로서 초반부터 등장한다. 따라서 범인은 여전히 셰퍼드지만 반전의 충격이 화자가 범인이었다-가 아니라 친구인 줄 알았던 셰퍼드가 범인이었다-로 바뀌었고, 푸아로가 사건이 끝나고 도시의 각박함으로부터 벗어난 줄 알았는데 "시골도 마음 편한 곳이 아니었다."며 쓸쓸해하는 것으로 끝난다.
탐정 푸아르의 조수 역할을 하면서 사건의 해결 과정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의사 셰퍼드가 주인공이다. 셰퍼드의 사건일지가 결국 소설 자체가 되는 것. 셰퍼드는 사건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은 배제했으며, 자신이 범인이므로 당연히 자신이 범인으로써 한 행동도 소설에는 서술되지 않는다.
마지막 반전이 하이라이트인 소설인데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읽다 보니 결말을 기대하며 참고 읽는 인내심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를 읽기 전에 이 소설을 읽었으면 어땠으려나.. '악의'를 너무 재밌게 읽어서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의 재미가 반감된 것 같다.
주 트릭은 살해당한 시각의 조작과 서술트릭. 피살된 애크로이드가 대화를 하는 소리를 들은 하인이 증언을 하는데, 사실은 애크로이드는 이미 죽어있었고, 목소리는 녹음기에 녹음돼 있던 소리였다. 그리고 역에서 걸려온 협박 전화. 그것은 셰퍼드가 범인이며 사건일지를 서술한 본인이기 때문에 협박 전화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되어 있지만, 사실은 단순한 심부름 전화였던 것. 랠프 패이튼과 아주 친하면서 용의자로 몰린 랠프 패이튼을 정신병원에 숨겨주고, 탐정의 조수 역할을 하며 사건을 쫓아왔던 의사 셰퍼드가 범인이라는 것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였다.
소설 내용중에 마작을 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마작을 좋아하다보니 마작을 치며 하는 대화보다 마작에 더 집중이 되더라. 소설 중 인물이 치를 초로 부르는가 하면, 뻥과 치를 헷갈려 한다. 그와중에.. 주인공은 천화(天和)로 오른다 ㅡㅡㅋ
한가지 더 생각나는 것은 소설 중 셰퍼드의 누나로 등장하는 캐롤라인의 성격이다. 캐묻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입가볍게 떠들고 다니고.. 워낙 싫어하는 인물상이다 보니 감정이입이 돼서 읽는 내내 조금은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소감을 적어봤는데, 1926년에 발표된 이 소설이 애거서 크리스티 명작 10선에 포함되는 듯 하다. 요즘은 워낙 읽을거리, 볼거리들이 많아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전부 읽어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p.s(살해동기) : 애크로이드의 부인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냈고(유산을 받은 것이 아니고 협박으로 뜯어낸 것), 투기로 모두 잃은 뒤 또다시 협박하여 결국 자살로 몰아넣었다. 애크로이드가 그 사실을 알게될까봐 살인.